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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보덕굴과 관음보살

글쓴이
양구군
날짜
2006-10-04 오후 4:56:29
조회수
3617

◈ 보덕굴과 관음보살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이야기.


금강산 송라봉(松蘿峰) 기슭에 있는 송라암(松蘿庵)에는 당시 혈기 왕성한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가 회정선사(懷正禪師)로서 천일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천일기도도 앞으로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밤 꿈에 법기보살(法起菩薩)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양구군 해안면 방부동에 몰골옹처사(沒骨翁處士)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급히 그곳을 찾아 교법을 배우도록 하여라."하는 말을 듣고 급히 그곳을 찾았다.


거기에는 우거진 수풀이 있었으나, 마침내 조그마한 집 한 채를 찾아 대문을 열고 소리쳐 물어 보았다. 나타나는 사람은 십팔ㆍ구세의 어여쁜 처녀였고,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청년 중 한 사람은 망설이다가,


"여보 아가씨, 이 곳에 몰골옹처사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즉 처녀는 좀 놀라는 표정으로,


"누구신지 모르나 물으시는 몰골옹처사는 우리아버지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나는 금강산에서 법기보살님의 말씀을 듣고 당신의 아버지에게 교법을 배우러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요? 모처럼 찾아오셨지만 헛일이십니다."


어여쁜 그 처녀에게 호기심을 가진 청년 중은 쉽게 돌아설 리가 만무할뿐더러 더욱 가까이 다가서며 묻기를 재촉하였다.


"그건 왜요?"


"정말 우리 아버지란 사람은 당신에게 교법을 가르쳐 드리지 못할 것은 물론이요, 도리어 천성이 흉악하여 알지 못한 사람을 보면 해를 끼치지 않고는 그냥 두지 않습니다. 낮에는 사냥을 나가시는데 벌써 해가 저물었으므로 곧 돌아올 것이니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 주십시오."


"그렇지만 법기보살님이 거짓말 하셨을 리는 만무합니다. 아무튼 지금 돌아간대도 도중에 날이 저물 것이니 아버지께 어떻게든지 잘 말씀하여 주십시오."


너무나 애타서 덤비는 이 청년 중에게 어찌할 바를 모를 것만 같던 그 처녀는 의외에도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난처합니다요. 아버지가 당신을 보면 기필코 그저 두지 않을 터인데…."


"각오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시면 나는 기쁘게 그 위해를 받겠습니다. 그것이 법기보살님의 하신 일이니까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제 다시 그렇다고 법기보살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확실히 그 청년 중은 처녀에게 사랑을 가지게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처녀 앞에서 그 아버지에게 죽게 되더라도… 그것도 보살님의 말씀일 것이면 만족이라고 생각하였다.


한편 돌아갈 것 같지 않은 청년 중의 애원에 처녀의 마음도 움직였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버지도 가해하지는 않을 것이니 나와 부부를 약속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눈치를 보아 잘 꾸며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나의 소원은…."


"오늘밤만 무사히 지내면 내일 아침 아버지는 또 산으로 사냥을 가시고 없을 터이니 그 때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참으로 갑사 합니다. 아무튼 잘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만사를 저에게 맡기십시오."


처녀는 고운 손을 젖가슴에 얹으며 청년 중을 쳐다보았다. 그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였다.


"당신의 이름은 무어라 합니까?"


"예. 보덕(普德)이라 합니다."


청년 중은 보덕을 처음 보았을 때, 첫인상은 깊이 그 자태를 가슴에 불살라 놓았다. 더욱이 겉말이나마 부부라고 아버지께 잘 꾸며 말하여 주겠노라 하는 꿈같은 말에 가령 그것이 거짓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여자로서는 퍽 어려운 일일 것임을… 참으로 청년 중은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처녀는 잘 말하고 아버지의 눈이 닿지 않은 곳에 숨겨주었다.


그런데 딱한 일은 청년 중이 그 처녀를 잊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이튿날에도 그는 돌아갈 줄 모르고 머물렀다. 하루는 기어이 덤벼들려 하였다. 보덕을 안으려고 한 그 순간 기절의 상태였다. 한참 후에야 꿈에서 깨어난 사람 모양으로 정신을 차려 눈을 떠 본즉 꿈인지 생시인지를 얼핏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랑에 취한 청년 중은 우선 그리운 보덕을 찾아보았다. 이상하게 보덕은 그림자와 같이 자취를 감추었고 자기가 서 있는 옆에는 그의 모양과 같은 한 개의 바위만이 우뚝 서 있었다. 그는
미친 사람 모양으로 다만 그의 자태를 찾아 날뛰었다. 이상하게도 그가 온 길이 전에 왔던 길이매 그는 내금강(內金剛)에 이르렀다. 청년 중은 갑자기 여자의 뒤를 따라 헤매었던 것을 고쳐 정신을 가다듬어 원화동천(元化洞天)의 앞까지 와 있었다.


다시 산비탈을 돌다가 내려가니 반갑게도 보덕은 저 편 개울에서 머리를 감고 있다. 그는 보덕을 보자 나는 듯이 쫒아 갔었다. 그러나 보덕은 새와 같이 달아나 종내는 자취를 감춰 버렸다. 청년 중은 또다시 만폭동(萬瀑洞)계곡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근처 연못에 찾는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아! 당신은…."


하고 부르며 그 그림자의 자취를 찾으려 앞에 있는 봉우리를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보덕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의외에 관음보살(觀音菩薩)이 엄연히 서 있었다.


"참 이상하다. 저것이 보덕으로 보이는 것은…."하며, 다시 연못을 본즉 거기에는 보덕의 자취였던 그림자는 어느 사이에 관음보살의 그림자로 변해 있었다.


청년 중은 얼른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혔다. 아! 잘못했다. 보덕으로 보인 그 여자는 관음보살의 권화였구나, 청년 중의 전신은 소름이 끼쳤다. 관음보살은 자기의 수업을 시험하기 위하여 보덕으로 변하여 자기의 마음을 알아보았던 것을 이제야 깨닫고 한참을 그대로 울어 버렸다.


그리하여 청년 중은 자기의 수업의 약함을 깨닫고 참회하여 다시 전심 수업하여 이름 높은 중으로서 여러 승려에게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 뒤에 선사는 보덕의 자태를 본 법기봉(法起峰)의 중턱에 지금의 보덕굴(普德窟)을 이루어 관음보살을 안치하고 수업득도 하였다고 한다. (단기 4270년 8월 회양군 회양면 읍내리 朴辰成氏 談)


 


※ 1985년 최상수는 《한국민간전설집》에서 <보덕굴(普德窟)의 관음보살(觀音菩薩)>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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