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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정절녀(貞節女)의 유래

글쓴이
양구군
날짜
2006-10-04 오후 5:00:11
조회수
3564

◈ 정절녀(貞節女)의 유래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땅 한 마을에 천석꾼인 맹진사가 살고 있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


맹진사의 탄식은 그칠 날이 없었다.


"이제 우리 집안은 아주 망하려나보다."


맹진사는 생각하느니 수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맹진사는 그 고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요, 지체도 남에게 떨어지지 않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슬하에는 늦게 본 아들 경환(景煥)이 뿐인데 그 아들이 알지 못할 병에 걸려서 신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용하다는 의원은 모두 데려다가 경환의 진맥을 보고 약을 썼으나 별 효험이 없는 것이다. 지혜가 있으면 무엇을 하며 돈이 있으면 무엇에다 쓰랴.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 병에 걸려서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그렇다고 그대로 앉아서 아들이
죽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바다보다 넓은 것은 하늘이요, 하늘보다 넓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요, 사람의 마음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은 어버이의 마음인 것이다. 맹진사는 경환의 나이 이십이 가까워 옴에 이제는 다 길렀다고 흡족해 했으나 이제는 그 마음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대신 근심과 걱정만이 쌓일 뿐이었다.


"병명이라도 좀 알았으면 속이나 시원하겠습니다."


맹진사는 백 리 밖에서 불러온 의원이 아들의 진맥을 짚는 것을 지켜보며 초조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듯 말을 했다.


"글쎄올시다. 나도 병명을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니 약방문도 낼 수가 없군요. 죄송합니다마는 딴 분을 한 번 모셔다 보시지요."


하며, 의원은 홀홀히 맹진사의 집을 떠나 버리는 것이다. 딱하고 기가 막혔다. 그러면 경환의 증세는 어떠한 것이었는가. 몸뚱이에 종기가 나서 하나가 아물면 또 딴 곳이 터져서 진물이 나고 그 주위로 자꾸 번져 가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얼굴에까지 그 증세가 나타나서 터지고 아물고 진물이 흐르는 데다 눈썹까지 뭉청 빠져나간 것이다. 말이 말을 만들고 소문이 소문을 만들어 근처에는 숙떡숙떡 말이 많았다.


"맹진사 아들이 천형병(天刑病)에 걸렸다면서.?"


"글쎄, 들으니 그렇다는데."


"그거 참 안 됐군."


"야단이군. 맹진사는 아들 경환이 뿐이 아닌가."


"그렇지…."


"그 재산이 아깝군."


"에이 이 사람아 재산이 문젠가 대가 끊어지는데."


"그렇기도 해, 어디 문둥병이야 고치는 수가 있나."


동네 사람들은 모여 앉기만 하면 맹진사의 아들인 경환의 병에 대해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내 아무리 천운이 박복하기로서니 단 하나밖에 없는 손이 천형병에 걸리다니…."


참으로 청천의 벽력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는 맹진사의 가슴속에서는 하나의 애절한 희망이 솟아올랐다.


"총각 귀신이나 만들지 말아야지."


그러나 그것 역시 그리 손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누구 하나 맹진사가 있는 자리에선 경환이 문둥이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돌려 세워 놓고는 입을 모아 수군거리는 것이었다.


"누가 문둥이에게 딸을 줄 사람이 있나. 아무리 재산이 천석꾼이면 뭘 하고 만석꾼이면 뭘 해."


이러한 말이 자연히 퍼져 거의 이러한 맹진사의 단 하나의 애절한 희망도 허사였던 것이다. 재산으로도 남의 입을 막지 못하고 탄식으로 소일을 하는데, 천우신조로 이웃 마을에 사는 송씨 집안에서 청혼을 해 왔다.


중매쟁이를 사방으로 보내서 신부만 똑똑하면 친정의 먹고 살 것을 대어 주는 것은 물론 신부만 내어놓기만 하면 알몸을 싸서 데려오겠다고 한 것이 효과를 본 셈이었다. 또한 경환이 문둥병이라는 소문이 이웃 고을까지는 아직 퍼지지 않았던 덕도 있었을 것이다. 송씨 일가에서는 맹진사의 집이 문벌도 과히 떨어지지 않는데다 재산이 많다는 말에 깊이 알아보지도 않고 혼사를 작정하였던 것이다.


맹진사는 곧 택일날짜를 보냈다. 맹진사는 소문이 날까봐 초조한 속에 혼사를 서둘렀다. 그러나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인간의 상정이다. 혼례를 닷새 앞두고 경환의 병은 더 심하여 얼굴의 종기는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이 번지고 몸이 고달파 몸저 눕고 말았다. 이러한 정상으로 어찌 혼례청엘 나갈 수 있으랴. 답답한 것은 경환이보다 맹진사였다. 맹진사는 죽고만 싶었다. 그러나 운명은 맹진사를 버리지 않았다. 대사를 이틀 앞둔 날 아침 생각지도 않은 김진사의 아들인 순익이 뜻밖에도 찾아왔다.
김진사와는 어려서부터 숙친한 사이라 늘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다녀서 전에도 여러 번 맹진사의 집을 드나들었었다.


"무슨 일이 생겨서 왔는가?"


"네. 실상은 아버님도 모르시게 저 혼자 생각으로 좀 뵈러 왔습니다."


"어서 말을 해 보게나."


"다름이 아니오라 돈 삼천 냥만 돌려주십사 하고 찾아뵈러 왔습니다."


"자네가 삼천 냥은 무엇에다 쓰려는가?"


"다름이 아니오라…."


말은 이러하였다. 김진사가 벼슬을 하는 동안에 돈을 모으기는커녕 가산을 탕진하다시피 하여 할 수 없이 호구책을 꾸미기 위해 공금을 이용하여 장사를 하다가 실패를 했다는 것이다. 잠자코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맹진사는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자네 자의로 내게 왔다고 했지?"


"예"


김진사의 아들은 가슴이 떨렸다. 자기 집안의 성쇠가 달린 일순간이었다.


"주지."


"네?"


"돈은 주겠네만 내 청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겠나?"


"네. 어떠한 일이라도 감수하겠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는 맹진사는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자네도 우리 집 사정을 알다시피… 그래서 자네가 경환이 대신 신부집에 가서 대례를 지내고 며느리를 데려다 주는 일일세."


"…."


"뒷일은 내 담당할 터인즉 염려할 게 없네. 그리고 다행한 것은 신부집에서 신랑 선을 보지 않은 것일세."


이 말을 들은 김진사의 아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승낙을 하고 말았다. 물론 돈 삼천 냥도 문제였지만 말을 듣고 보니 차마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뒷일은 맹진사가 책임을 진다니까 마음도 어느 정도 놓였다.


이리하여 혼사는 예정대로 무사히 끝이 나고 순익은 맹진사가 시킨 대로 몸이 편치 아니하다 칭탁하고신방에는 들지 않고 삼일을 치르고 무사히 돌아와서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폐백을 드리는 날 밤에 신부는 기절을 하듯이 놀랐다. 초례를 지낸 남편은 간 곳이 없고 꿈에도 보기 무서울만치 흉측한 남자가 정작 남편이라니…. 그러자 시아버지 되는 맹진사가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며느리를 잡고서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굴욕을 참을 수 없는 신부는 그만 야반도주를 해서
친정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맹진사는 며느리를 데려다 놓고 사정을 하면 신부가 제 아무리 똑똑한들 별 수 없이 말을 들으리라 생각했던 것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 말도 못하고 그만 머리를 싸매고 자리에 눕고 말았다. 이와 반대로 송씨 일가에서는 사기 결혼이라고 들고 일어나서 초례를 지낸 신랑을 찾아내지 않으면 관가에 고소를 하겠다고 위협을 해왔다. 자, 이쯤 되고 보니 맹진사도 딱했지만 김진사의 아들도 딱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김진사는 폐백을 받고 아들을 그리로 장가를 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진사에겐 순희(順姬)라는 열여덟 난 딸이 있었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러한 사연을 들은 순희는 분연히 정색을 하며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님. 어린 제가 무엇을 알겠습니까마는 지금 듣자오니 우리 집이나 송씨네는 전화위복이 되어 다행이오나 맹진사댁은 이로 인해서 더 마음의 고난을 당하게 되었사오니 그 얼마나 딱 하옵니까. 그리고 또 아버님께서도 맹진사댁의 삼천 냥의 후원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쯤 아버님은 물론 이려니와 우리 집안이 어찌 되었을지 알겠습니까."


"그야 네 말이 그른 배는 아니다마는 어찌 할 수 있느냐?"


"맹진사 댁에서는 결국 이제나 저제나 며느님 하나만 얻으면 되지 않겠어요."


"그야 그렇겠지."


"그렇다면 제가 그 집 며느리로 가겠어요."


"아니 문둥이의 계집이 되겠단 말이냐?"


"놀라실 일이 아니라 우리 집 처지를 생각하신다면 무어 그리 대단할 것도 없을 줄 압니다. 그러니 아버님께서는 제가 가는 길을 막지 말아 주시옵기 바랍니다."


김진사는 기가 막히는 일이었으나, 감히 딸의 뜻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한편 맹진사는 김진사의 딸이 자기의 며느리 되기를 자원한다는 말에 눈물을 흘려가며 감사했다. 목마른 자가 샘을 발견한 셈이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경환도 만족하여 고통 속에서도 기쁜 빛을 나타냈다. 맹진사는 순희를 며느리로 맞아들이었다. 그리고 온 집안이 기쁨 속에 세월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나 기쁨도 순식간이었다. 경환의 병은 점점 도져서 그 명이 경각에 달렸다. 아무래도 경환의 목숨이 밤을 넘기지 못할 것만 같았다. 순희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렇다. 여필종부라 하지 않았는가, 나도 따라서 죽자."


순희는 결심을 하고 고이 간직했던 비상을 물에 타서 머리맡에다가 놓고 마지막 숨을 재촉하는 남편을 남겨놓고 뒷동산으로 올라가서 멀리 친정 쪽을 향해 절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께 작별을 고하고 내려왔다.


방으로 들어서 순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비상을 타놓은 물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경환은 중병 속에서 희미하게 정신을 가다듬어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를 찾았으나 대답이 없는지라 그대로 누운 채로 머리맡을 더듬어서 비상을 타 놓은 물을 마신 것이다. 그러나 이 어이된 일인가? 남편은 다시 물을 찾았다. 순희는 한편 놀라고 한편으로는 반가 와서 달려 나가서 물을 떠다 입에 대 주었다.


"아니 이물 말고 아까 먹던 물을 좀 주구려."


순희는 다시 한번 놀랐다. 순희가 망설이자 경환은 짜증을 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온 집안 식구가 모두 달려 나왔다.


"도대체 아까 저 애가 먹은 것이 무엇이냐?"


맹진사는 초조하게 물었다. 순희는 이쯤 되고 보니 말을 아니 할 수 없어서 지난 경과를 상세히 말했다.


"그래? 비상은 보통 상한 사람이 먹으면 죽되, 그 병에는 약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죽는다고 한들 다 죽게 된 사람이니 무슨 한이 되겠느냐. 비상은 내게도 있으니 어서 물에 타 먹이도록 해라."


맹진사는 말을 마치기가 바쁘게 사랑으로 나가서 비상봉지를 갖다 주는 것이다. 비상을 탄 물을 마신 경환은 온 몸에 번졌던 종기가 모두 아물고 마침내 맑은 새살이 돋아 나왔다. 그는 완전히 병을 고친 것이다. 참으로 우연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아내의 정절한 마음씨가 마침내 남편의 병을 고치게 하고 새 사람이 되게 한 것이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정절녀라 일컫고 정절문을 세어서 그녀의 갸륵한 정신을 길이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둥병에 비상을 먹어서 나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과학적인
이야기임을 분명히 부기하는 바이다. (비상은 사람이 먹으면 즉사하는 극약이다.)


 


※ 1972년 박영준의 《한국의 전설》에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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